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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지구가 웃다(소설)

by 슈퍼런치박스 2024.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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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웃다

 

2008년 8월 13일의 일이다. 

 

이웃집에 사는 뚱뚱한 노인네이자, 

 

1983년 챌린저호에 탑승하여 우주를 유영한 첫번째 여성 우주비행사였던 샐리 라이드는 

 

이른 아침에 그녀의 집으로 나를 부른 다음 생일 선물로 자신이 찍었다는 낡은 사진 한 장을 주었다.

 

 

 

 

“흐흠... 그건 우주에서 본 지구의 사진이란다.”

 

 

기침소리를 내며 메마른 목소리로 샐리 라이드가 중얼거렸다. 

 

사실 샐리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건장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으며, 단지 뒷모습을 보노라면 40대 중년의 레이디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건강한 그녀도 집안의 유전인지 기관지쪽은 좋지 않아서 항상 약을 챙겨먹었다.

 

 

“음…”

 

 

애초에 선물따윈 기대하지 않았지만 겨우 종이 쪼가리라니... 

 

그 당시 난 어엿한 18살이었고 (물론 그 나이 때의 누구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어른이 다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평생 풍요로움과 명예 속에서 아쉬운 것 없이 사셨던 양반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프린트할 수 있는 지구 사진을 선물이라고 준단 말인가? 

 

그녀는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라면 쿨하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주면서 졸업파티에 입을 재킷을 사 입으라고 할  수 도 있지 않는가? 

 

나는 약간 실망했고 그러한 나의 감정은 목소리를 타고 드러났다. 

 

 

“아... 음... 에... 좋군요.”

 

 

사실 인터넷으로 지구의 사진따윈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우주에서 직접 찍었다는 건 그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 소중한 것을 나에게 준다는 것은 그녀에겐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일말의 고마움이 들었다.

 

 

“이런 걸 받아도 되나요?”

 

 

“그럼. 넌 좋은 아이니까.”

 

 

샐리의 축 늘어진 눈아래 살과 입가가 살짝 움직인다. 

 

그녀는 거친 손바닥으로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진은 정말 특별하단다.“

 

 

“직접 우주선에서 찍었으니까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야. 자세히 보렴. 지구가 웃고 있단다.”

 

 

“네?”

 

 

“자세히 봐봐.”

 

 

나는 사진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푸른 빛이 가득한 폴라로이드 사진이었다. 

 

지금 이 양반이 어리다고 나에게 장난을 치나? 아니면 약간 머리가 어떻게 되신건가? 

 

하지만 샐리의 얼굴엔 장난끼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그냥 사진일 뿐인데요?”

 

 

“아니란다.“

 

 

“아... 네.”

 

 

아니라는데 내가 맞다고 우겨서 저 늙은이를 마음아프게 할 필요가 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샐리가 내 얼굴 가까이 사진을 들이대며 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아시아 대륙을 잘보렴. 타클라마하칸 지역이 녀석의 볼이란다. 약간 홍조를 띤 것을 알 수 있지. 그리고 여기 히말라야의 아래 하늘 호수라고 불리는 곳을 보렴. 이것이 눈이야. 잘 보렴. 눈일 찡긋하고 있어서 잘 안보이니까. 그리고 여기서 점차 옆으로 가보면 그래 이곳. 산둥반도와 한반도가 어느 때보다 가까워지고 있는게 보이지 않니? 바로 이것이 녀석의 보조개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샐리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알퐁스씨의 별이란 소설에서 양치기가 순진한 아가씨를 무릎에 올려놓고 하늘의 아무 별들을 이것저것 갖다 붙여 

 

"FTA 쇠고기 수입 자유화를 미끼로 부시와 친한 척 악수를 하는 명박이의 별”이라던지 

 

”티벳은 중국과 엄연히 다른 나라라고 명확히 주장하지 못하고 한숨짓는 달라이 라마의 별"이라던지

 

"자신의 누이를 욕하는 무례한 이탈리아 인에게 머리박치기를 하는 지단"의 별등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지 않는가? 

 

도대체 무슨 타클라마하칸 사막이 지구의 볼이란 말인가?

 

 

“내가 이 녀석을 웃게 하려고 우주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니?”

 

 

“아하하. 그런가요? 꽤 힘드셨겠는데요.”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다지 무례하고 버릇없는 아이가 아니었고 이웃집의 푸근한 느낌의 할머니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싶지도 않았다. 

 

2시간 동안 지구란 녀석을 웃기게 한 설명을 들은 다음 결국 사진을 받아들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꽤 탈진했는지 사진을 책상서럽안에 쳐박아 두고 오후 내내 잠을 자버린 것 같다.

 

친구의 전화를 받으라는 누나의 거센 목소리와 우렁찬 발길질 세례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른 오후부터 술집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친구들과 몇명의 여자들을 만나 밤이 새도록 놀았다. 

 

나름대로 꽤 다부지게 생일을 즐겼던 것  같다. 

 

사진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렸으니까.

 

***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다시 복학을 하고 유학을 갔다.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어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동안 동거를 대여섯번 했는데 마지막 여자는 기상학자였다. 

 

폭풍이 심하게 몰아치던 어느날 섹스를 하고 나서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이봐. 내가 재미있는 걸 보여줄까?”

 

 

그녀는 나에게 사진을 건넸다. 그건 동남아시아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사진이었다.

 

 

“이게 뭐야?”

 

나는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왼쪽 눈을 찡그렸다. 

 

밖에는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그에 따라 경첩이 헐거워진 창틀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유리는 금새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그녀의 담배연기가 나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몇 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했던 쓰나미 기억해? 이건 쓰나미가 일어나기 바로 전의 인도네시아 주위를 찍은 위성사진이야.”

 

 

“음... 그런데?”

 

 

“그런데라니? 자세히 인도네시아 부분을 보라구. 여기 수마트라 섬의 윗부분이 심하게 비틀어져 있어. 마치 이맛살을 찌푸린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여기 아래의 보루네오를 보라고. 튀어나온 눈동자처럼 상당히 부풀어져 있어. 이건 마치…”

 

 

“마치?”

 

 

“모르겠어. 내가 받은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과학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게 웃기지만 사실 기분이 이상해.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다른 여러가지 과학적 데이터 추정을 떠나 그냥 화가나서 쓰나미가 일어난 것 같다니까.”

 

 

“화가 나? 누가?”

 

 

“몰라. 나도.”

 

 

“지구가 화가 났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하하.”

 

 

나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예전 샐리 할머니가 해준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응?”

 

 

“아니야. 예전 생각이 떠올라서.”

 

 

“뭔데 그래?”

 

 

재촉하는 여자친구의 말에 나는 예전 샐리 할머니가 주었던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사진 지금 있어?”

 

 

“몰라. 내가 어디에 두었는지. 하지만 기억나는 건 타클라마하칸 사막이 뭐 볼이었다는 것 같은데…”

 

 

“음. 꼭 그 사진 보고 싶어.”

 

 

“아마 어머니 집에 있을거야. 누가 치우지 않았다면 말이지.”

 

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허리를 끌어안았다. 

 

꺄악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끌려오는 그녀. 여자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으로 목을 애무한다.

 

그녀의 달짝지끈한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점차로 달아올랐다. 

 

1시간정도 우리는 다시 섹스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사정을 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대로 머리를 내 가슴에 대며 여자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말이야. 당신은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꽤 낭만적이지 않아? 지구가 웃었다는 게.”

 

 

“엥. 글쎄.?”

 

 

“궁금해. 왜 지구가 그 샐리 라이드 할머니를 보고 웃었는지. 아니 어떻게 했길래 샐리 할머니는 지구를 웃길 수 있었을까?”

 

 

“나도 잘 기억이 안나. 그냥 흘려들은 이야기라서. 일본식 만담이라도 한걸까? 아니면 슬랩스틱 코미디라고 한걸까?“

 

 

“그걸 알면 지금 지구의 화를 풀어줄 수 있을텐데 말이야.”

 

 

“아쉽게도 그녀는 10년전에 죽었어.”

 

 

아쉽게도 그녀는 죽었고 그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 나는 어머니를 통해 지나가는 말로 그 소식을 들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여자친구는 잠옷을 입은다음 맥주 두개를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그리고 뚜껑을 따 나에게 건넸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그녀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리고 허기진 상태에서 바로 취기가 오는지 아니면 피곤했던지 그대로 엷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문득 샐리 노인네의 음성이 그리워졌다. 

 

늘 나에게 빙그레 바나나 우유를 사다달라며 심부름을 시켰었는데.

 

 

“휴... 그럴 줄 알았으면 그때 샐리 할머니의 말을 잘 새겨들을 걸 그랬나?“

 

 

약간은 센치해진 나는 잠들어있는 여자친구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 난 지구를 구할 영웅이 되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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