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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5화)

by 슈퍼런치박스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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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지구와의 대화



 

결국 집을 팔지 않기로 했다. 

 

아니 내 집이지만 팔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여자친구에게 설명했다.

 

여자친구는 이해한 것 같았다.

 

아마도?



다만 그녀는 내가 받은 명함으로 시청 공무원 김아무개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아요. 이 집을 안 팔고 여기서 살게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그녀는 이 집에 풀인테리어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정부 지원으로.



“새 아파트 수준의 인테리어가 아니면 절대 결혼하지 않을거예요.”



“네?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하지만 두 분이 서로 사랑해서 결혼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그거랑 그거랑은 달라요. 아무튼 조건이 맞지 않으면 전 이 결혼 못해요.”



물론 나는 개의치 않았다. 

 

정신적인 사랑이 밥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연애와 결혼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윤과 결혼하고 싶으면 그에 맞는 물질적 조건을 준비하면 된다. 

 

아니면… 글쎄… 나는 결혼을 못하는 거겠지.

 

심플하다.

 

다행히 김아무개씨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역시 윤이 생활력 강한 좋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풀인테리어 한다면 비용이 꽤 될텐데 정말 가능한 거예요?”.



“아 물론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 드리는 건 아닙니다. 정부사업을 하는 사설 업체들 중 몇 팀에게 이 일을 맡길거예요. 그리고 그 분들은 따로 간접적인 혜택을 드리면 됩니다.”



“한번 더 말하지만 무료협찬이라고 허접하면 안돼요. 전 레미안이나 자이급 신축 시설을 원해요.”



“물론이죠.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사설 업체들 중에 1군 브랜드 아파트의 인테리어 시공을 맡은 곳도 있거든요.”



***



결국 결혼의 큰 산을 넘었다.

 

우리는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여러가지 결혼에 필요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드디어 인테리어 공사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장 감독과의 미팅을 통해 인테리어의 여러가지 옵션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고 윤이 원하는 대로 선택을 했다.

 

기존의 짐은 이삿짐 센터를 통해 포장해서 몇 주간 컨테이너 박스에 보관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정부가 지원해준 호텔 방에서 그동안 거주하기로 했다. 

 

하지만 집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했던 나는 매일 잠깐이라도 우리 집에 들려보기로 했다.



공사 첫 날은 윤도 공사 상황을 보고 싶다며 우리 집에 찾아온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윤은 먼저 와 있던 나를 보자마자 짜증을 냈다.



“오빠. 근데 여기 주차가 왜 이 모양이야. 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는 처음이라고. 무조건 근처 공영주차장에 대야 한다니 이게 말이 돼?”



사실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아파트에는 주차공간이 없다.

 

아마도 워낙 오래된 아파트라서 그 당시에는 50년 뒤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차를 많이 가지고 다닐 지 예상을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아파트는 주차장 시설이 없다.



“아니 지하는 왜 안사용하는 거야? 입구가 열려있길래 지하로 들어갔더니 어두컴컴한 곳에서 무슨 기계장치 설비만 있고 주차시설은 없더라고.”



“아마 지하도 아파트 공용시설이 아니라 사설 전용시설로 되어서 주차장으로 쓰지 못하는 것 같아.”



“아… 이 결혼 힘드네. 주차장과 연결되어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신혼의 기본이라고. 마트 한 번 다녀오면 매번 이렇게 낑낑대고 짐을 날라야 하는 거야?”



“하… 하지만 요새는 마트보다는 새벽배송 많이 하잖아. 우리 집도 서울안이라서 쿠팡이나 마켓컬리 되거든.”



내 말에 윤은 잠시 멈칫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네. 그럼 그건 패스.”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억지 안 부리고 바로 납득해버리는 쿨한 여자. 윤이었다.



***

 

첫 날의 주요 목적은 철거였다.

 

새로운 가벽과 천정 확장등을 위한 목공 작업이 진행되기 전에 전 오래된 가벽이나 필요없는 붙박이 옷장 등 오래된 가구등을 철거 작업 및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감독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냥 커피 등을 사가지고 와서 인분들에게 드리고 철거 작업에 방해되지 않게 뒤에 물러나 잡담을 나누는 게 전부였다.



“그냥 돌아갈까? 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텔로 돌아가려는 찰라 인부 중 한 명이 나를 불렀다.

 

집 안에 금고가 있다는 것이다.



“네 금고요?”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을 따라 안방에 가서 붙박이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 아래쪽에 안으로 움푹 꺼진 공간이 있고 그 안에 정말 가로, 세로, 높이가 대략 50cm 정도되는 소형 철제 금고가 빈틈없이 박혀 있었다.



“뭐야. 오빠도 모르는 거야?”



“응. 이건 처음 봤는데.”



보아하니 옷장 안의 움푹 꺼진 공간을 가릴 수 있는 나무벽이 있었다. 

 

철거를 하면서 옷장을 강제로 해체하려고 하니 고정된 나무벽이 떨어져 나가고 그 안쪽 금고가 드러난 것 같았다.



“금고를 꺼낼 수 있나요?”



“글쎄. 금고 바깥쪽으로 콘크리트로 마감을 해놓아서 강제로 꺼내려다가 금고가 망가질 거 같은데요. 일단 금고를 열고 중요한 물건을 꺼내야 할 거 같아요.”



인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금고라서 어떻게 여는 지 몰라요.”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래? 그런 금고가 있었어?”



“응. 안방 옷장안에 있던데?”



“신기하네. 그 양반 살아 생전에 통 이야기안 하던데.”



엄마는 아예 금고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요?”



인부가 나를 보고 물었다.



“어차피 철거해야 하니 강제로 열 수 있을까요?”



“네. 뭐 그거야. 금고를 안 쓸거면 빠루로 문짝 레버를 부수면 되니까요.”



더락에 비할바는 못하지만 팔뚝이 두꺼운 인부는 노련하게 길쭉한 쇠 지렛대를 사용하여  결국 금고 문 고리를 박살냈다.

 

그러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금고의 철제 문이 쉽게 열렸다.  

 

재미있게도 그 안에는 LED가 반짝거리는 Wi-Fi 장비가 있었다. 금고안에 전원 시설도 있어 가동이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Wi-Fi 장비가 맞긴 한거야? 휴대폰으로 Wi-Fi 신호를 잡아보려는데 아무것도 없는데.”



그녀 말대로 휴대폰으로 Wi-Fi 연결을 시도하려고 하는데 주변에 Wi-Fi hotspot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어라? 이 마크는?”



그때 윤이 Wi-Fi 장비의 로고를 보더니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이 마크는 아까 아파트 지하실에서 봤던 장비에 붙어있었던 마크랑 같은 건데.”



그 순간 직감을 했다. 

 

이건 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장비가 아니라는 것을.




바로 나는 망설임없이 김아무개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자초지종을 듣더니 깜짝 놀라며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36분만에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금고가 부서진 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아아. 철거전에 미리 조치한 줄 알았는데 지시사항이 누락이 되었나 보네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닙니다. 저희 실수네요. 다행히 분석기는 동작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닙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우리 집에 버젓이 있는 이게 뭐냔 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냈다.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리기가…”



“그럼 치워도 되는거죠? 여긴 내 집이니까요.”



내 말에 아무개씨는 당황하는 것 같았다.



“자… 잠시만요. 정 그렇다면 전화를 하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또 VIP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건가?

 

다른 방에서 통화를 한 아무개씨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좋습니다. 이 장비 공개 건 그래도 쉽게 승인이 났습니다.”



“네 당연하죠. 그래서 이게 뭐죠?”



“이건… 지진파 분석기입니다.”



“네?”



그의 말에 윤이 납득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지하의 그 엄청난 크기의 기계 장비들이 있었던 것이 이해가 되네. 그게 지진 측정 장비인건가요?”



윤의 말에 아무개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금고안의 이 장비는 지하의 관측소에서 측정된 지진신호을 모아서 패킷화하여 클라이언트에서 재배포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반대로 클라이언트의 패킷을 받아 지진파 형태로 리다이렉션을 하기도 하구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방금 지진파 분석기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분석만 하는데 아니라 양방향 통신을 하는거죠. 바꿔 말하면 전화기의 용도라는 겁니다.”



“전화기요? 누구랑 전화하는 건데요?”



아무개씨는 손가락을 아래를 가르켰다.



“누구긴 누구겠어요. 바로 지구죠.”



***



“그럼 이 장비를 써서 지구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가요?”



내 말에 아무개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론적으론 그렇습니다.”



“이론적이라는 것은?”



“사실  아버님인 TS님만이 이 장비의 사용이 가능하셨으니까요. 지금 그 분이 돌아가신 이상 이 장비를 이용해 지구의 신탁을 받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아무개씨는 지구와의 대화를 신탁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사실 이 집의 거주자이자 신탁을 받는 예언자의 역할을 맡아왔다고 했다.



“우와…”



나와 윤은 동시에 나지막하게 탄성을 질렀다.



“오빠네 아버님 좀 멋진데.”



그러게나 말이다.



말년에 생계에 쓸 현금흐름도 마련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손 벌리기엔 자존심이 강한 고집불통 노인네인줄 알았는데…

 

나보다 훨씬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오셨나 보다.

 

죽기전에 나에게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한번 해볼 수 있나요?”



“네? 지구와의 통화말씀이신가요?”



“네. 아버지가 했다면 혹시 저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안 그래도 이 부분은 저희쪽에서 부탁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보공개 승인도 바로 된 것이구요.”



그가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좀…”



나는 그에게 내 휴대폰을 건넸다.

 

그는 내 휴대폰의 Wi-Fi을 킨 후 “숨겨진 Wi-Fi 잡기”를 눌렀다. 

 

그리고 지구통신 SSID와 패스워드를 넣고 눈앞에 보이는 장비의 Wi-Fi를 잡았다.

 

Wi-Fi가 잡히자 마자 트리거가 되어 새로운 앱 하나가 설치되었다.

 

그것은 Wi-Fi 장비에 있었던 아이콘과 함께 지구통신… 이라는 이름의 앱이었다.

 

아무개씨가 다시 휴대폰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 앱을 실행하면 됩니다.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VoIP 앱이거든요.”



이게 뭐라고 살짝 긴장이 되었다.

 

침을 꼴깍하며 앱을 실행했다.

 

경쾌한 다이얼 음성.

 

그 순간…

 

갑자기 지진이 나듯 아파트 바닥에 잔잔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 이게.”



“네. 지하 1층의 지진파 통신기가 동작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사실 이게 전력을 엄청 잡아먹기 때문에 하루에 한번 약 1~2분 동안밖에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곧 전화가 연결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여보세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무슨 말이 들리나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지지지직 저주파 형태의 소음만 들릴 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요.”



내 말에 김아무개씨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아무나 지구의 지진파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서요. 그만큼 아버님이 특별하신 거였죠.”



“뭐야. 나도 듣고 싶어! 스피커 폰으로 켜봐.”



여자친구 윤의 말에 나는 스피커폰 옵션으로 변경했다.

 

물론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리고 1분 동안 우리는 계속 휴대폰의 의미없는 저주파를 듣고  있었다.



“이… 이제 그만 종료할까요? 아무래도 전력이 너무 많이 들어서요.”



김아무개씨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앱을 종료했다.

 

그리고 그 후 약 5초뒤에 서서히 아파트에서 느껴졌던 진동이 사그라졌다.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무나 예언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김아무개는 나를 위로했고, 금고안의 Wi-Fi 장비는 그대로 보관해달라고 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금고의 문은 다시 안 보이게 보수해두겠습니다. 그러니 이제까지처럼 그냥 방치해두시면 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아무개씨는 남아서 철거 인부들에게 주의를 준다고 하길래 나와 윤은 먼저 집을 떠났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

 

그리고 꿈 속에서 나는 지구와 또 다시 대화를 했다.



“요 친구. 용케 연락을 했네.”



내가 답변을 하려는 순간 그가 말했다.



“말하지마. 그럼 알아챌테니. 그냥 내가 하는 말을 들어.”



나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지만 아마 조만간 큰 일이 있을거야. 그리고 너도 그 소용돌이안에 빠져들겠지. 그걸 피하려고 아마도 TS는 너에게 아무것도 이야기 안한 것이겠지만… 이제 그가 없으니 니가 너희 아버지 역할을 대신 해야할거야.”



덤덤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나는 약간 불안감을 느껴서 질문을 하려고 했다.



“쉿!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니까. 그러면 알아채니까… 아무튼 내가 할 말은 이정도야. 이제 1분이 넘어가는 것 같은데 끊자. 그때까지 잘 지내도록 해.”

 

나는 조용히 입속으로 “네.”라고 말했다.

 

-뚜뚜뚜뚜.

 

그렇게 지구와의 첫 대화가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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