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누구나 한때 자살을 하고 싶은 적이 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
나는 결혼식을 했고,
풀인테리어가 완료된 우리 집에서 윤과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
(아직 혼인신고를 구청에 제출을 안했기에 동거라고 하는게 맞겠지.)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한 다음,
회사에 출근하고,
일을 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윤과 저녁을 먹고,
잔다.
매일 같은 루틴.
주말에는 둘이 같이 집에서 뒹굴뒹굴.
혹시 윤이 친구들과 약속이 있으면 나 혼자 집에서 뒹굴뒹굴.
아니 사실은 집에 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나는 내 폰의 VoIP 앱을 키고 지구와 시시콜콜 수다를 떨었다.
수다의 주제는 주로 나였고, 지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지치면 지구와 함께 TV로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로를 시청하기도 했다.
VoIP앱은 화상연결도 지원되었기 때문에 휴대폰의 카메라를 TV쪽으로 변경한 다음 삼각대에 고정시켜 두었다.
그러면 지구는 내 휴대폰의 카메라를 통해 TV를 볼 수 있었다.
***
이 날도 나는 지구와 둘이서 TV를 보고 있었다.
TV의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지구촌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상 기후 변화 때문에 북극 알래스카의 눈이 녹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알래스카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져 급속하게 메탄을 방출하고 있습니다.
-메탄은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의 21배에 이르는 강력한 온실가스이며, 이는 지구의 이상기후의 악순환이 될 예정입니다.
흠…
기묘한 느낌이다.
지구와 함께 지구의 위기에 대한 뉴스를 보고 있다.
약간의 침묵.
-프랑스 남부에 살던 80대 부부는 별장 다락방을 정리하던 중 과거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 총독이었던 선대가 가져온 나무 가면을 발견했는데요.
-쓸모없는 물품이라고 생각한 노부부는 중고품 상인에게 우리 돈 약 21만 원에 이걸 팔았다고 합니다.
이미 심각한 기후 뉴스는 다른 화제로 전환되어 있었다.
문득 지구의 생각이 궁금했다.
“어때요?”
“뭐가?”
“아니 방금 전요.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고 하는 뉴스요.”
“어떻긴. 사실인 걸.”
“기분은 어때요?”
“글쎄. 이제껏 45억을 살아오면서 이럴 때도 있었고, 저럴 때도 있어서. 뭐 특별할 건 없는데.”
자신의 일인데 너무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지구.
“기분이 나쁘지 않나요?”
“기분이 나쁘냐고? 왜 그래야 하지?”
“아니 음…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온도가 올라가는 건 아무래도 인간때문이잖아요. 인간이 자신들의 편리때문에 저질러 놓은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지구 생태계가 망기지는 거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아아… 무슨 어디 다른 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바로 당신에게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구요.”
“알아. 그리고 사실 몸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야.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고열을 동반한 감기에 걸렸다고 할까? 이 정도면 보통 약을 처방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그의 말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지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약이라는 것이 인간 바이러스를 박멸시키는 백신이 아닐까 혼자 상상을 했다.
결국 인간의 미래는 이런 것이다.
멸망…
그래도 멸망하기 전에 결혼이라는 것도 해보고 나는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아이를 낳은 생각이 없었기에 해볼만한 건 다 누렸다.
“지구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네요. 인간이 멸종되는 한이 있더라도.”
스피노자가 그랬다. 지구가 내일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아부를 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사실 지구의 안전 앞에서 인류애 따위는 사실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지구는 50억년을 더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앞으로 먼 미래 지구는 지구 자체보다도 태양의 팽창으로 없어질 거라고.
태양은 현재 수소를 태워서 빛을 내고 있다.
그리고 태양 내의 수소가 완전히 소진되는 것이 약 50억 년 후쯤이라고 예측되고 있으며 이후 태양은 팽창을 하는 적색거성이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태양의 팽창이 태양 주변에 존재하고 있던 행성들의 공전주기들에 영향을 주어 균형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 결과 팽창하는 태양으로 추락하거나 삼켜질 거라고 했다.
그래서 지구의 수명은 앞으로 50억년이 남은 것이다.
“아이쿠. 한국의 속담으로 비유하자면 쥐가 고양이 걱정을 다 해주는 거니?”
적절한 비유의 속담이었다.
지구는 머리가 좋아서 이미 적절한 비유나 수사를 대화에 섞어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살 수 없을 거 같아. 아마도.”
“왜요? 약을 쓴다면서요.”
“내 말을 잘 들어봐. 보통의 경우 그렇다는 거잖아. 나는 굳이 치료받지 않을거야.”
그 말은 인간을 용서한다는 것인가?
속으로 살았다!라고 쾌재를 부르며 안도했지만 그 뒤 지구의 말이 더 무시무시했다.
“난 곧 자살할 계획이거든.”
“아…”
그것은 인간의 멸망보다 더 무서운 말이었다.
“왜… 왜요?”
“사실 지금 너무 고통스러워. 누군가 내 머리의 맨틀안까지 여러군데 강제로 구멍을 낸 다음 튜브를 강제로 삽입해서 외핵에 뭔가를 주입하고 있거든.”
“네? 누가요?”
“몰라. 하지만 추측한다면 인간들이 아닐까?.”
“하지만 지구의 외핵까지 구멍을 뚫었다는 건 뉴스에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인간에게 그런 기술력이 있다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그럼 누구지? 이건 자연현상이 아니야. 인간이던 다른 고등생명체이건 지금 내 몸안에 그 짓을 하고 있어.”
“음… 한번 김아무개씨를 만나면 물어봐야 겠네요.”
“니가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상황이 그래. 꽤 고통이라서 이렇게 살 바에는 자살을 할거야.”
“자살을 하면 역시나 인간들은 모두 즉사하겠군요.”
“그건 모른다니까. 죽은 몸안에도 구데기는 살 수 있는 거잖아.”
그래. 지구의 말이 맞다. 대기와 물이 사라지고 황폐화된 지구에서도 박테리아 같은 생명체는 살 수 있겠지.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죽으면 행성은 어떻게 되는 거죠?”
“흠…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방금 떠올린 건… 뭇국이 되겠지.”
“네? 뭇국이요?”
그는 나에게 그의 차원에서 꽤 인기있는 시 하나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읊어 주었다.
행성을 통채로 삶아내다 그때 나는 여자친구를 위해 '행성을 통채로 삶아내다'라는 국을 만들어 내었다. 식탁에 앉아 내가 준비한 국을 시음한 그녀는 이건 겨우 뭇국이 아니냐고 투덜거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행성의 맨틀 껍질을 깍아내고 외핵과 내핵을 제거한 후 알맹이를 다듬어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푹 삶아 맛깔스러운 국물을 내는 것이 꽤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주에서도 맛보기 힘든 나의 위대한 작품은 한낱 뭇국이 되어버렸다. |
“행성들이 사는 차원에서는 행성이 누군가의 식재료인가 보네요.”
“뭐든 상대적인 거니까. 내가 사는 차원에서 너는 현미경으로 겨우 볼 수 있는 미생물일 수도 있고 또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포함한 소우주일 수도 있는거야.”
솔직히 이 당시 나는 그렇게 현명하지 못했기에(아니 평범하다고 해야할까?) 그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내 머리속에는 이 지구의 자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고민밖에 없었다.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8화) (124) | 2024.01.25 |
---|---|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7화) (112) | 2024.01.24 |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5화) (95) | 2024.01.17 |
지구가 웃다(소설) (90) | 2024.01.15 |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4화) (104) | 2024.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