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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3화)

by 슈퍼런치박스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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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구축 아파트를 팔아보자



 

여자친구 윤을 처음으로 집에 데리고 왔다.

 

그녀는 한번도 인테리어 보수공사를 하지 않은 50년된 안방, 욕실, 부엌등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생각외로 엄청 후지진 않았네.”

 

“그래? 그럼 마음이 바뀐거야?”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잖아. 이런 구닥다리 낡은 집이 우주의 끝이라니. 설득력이 없어. 일생에 한 번 뿐인 신혼인데 얼마 되지 않은 돈이라도 이거 팔고 신축 가야겠어.”

 

실행력이 강한 그녀는 아예 내 앞에서 동네 공인중개사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집을 매물로 내놓기로 했다.

 

“가격은 얼마로 하냐구요?”

 

그녀는 공인중개사와 전화를 하다 나를 쳐다보았다.

 

“얼마로 해?”

 

“응?”

 

“이 아파트 얼마에 팔거냐고?”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얼마로 하나니까?”

 

“일단 끊어봐. 이렇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아니야.”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오빠. 나랑 결혼하기 싫어?”

 

그건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아니.”

 

“그럼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 나야 이 집이야.”

 

왜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가끔씩 이렇게 나에게 강요를 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대답을 해야 했다.

 

“물론 당연히 너지. 하지만 나에게도 지켜야할 아부지의 유언이라는 게 있으니까.”

 

“사실 임종하시기 전에 아버님이 환각이나 환청을 들으신게 아닐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구.”

 

“흠…”



****

 

사실 윤이 하도 성화를 부려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이 집의 매매건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뭘 그런 걸 나에게 물어보니. 니거니까 니가 마음대로 하는거지.”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쿨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정말 우주의 끝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글쎄다. 원래 좀 허무맹랑한 양반이긴 했잖니. 나도 잘 모르겠어. 왜 그렇게 이상한 핑계로 고집을 피웠는지. 다만…”

 

어머니는 망설이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도 니가 행복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면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크게 불만은 없지 않을까? 그게 유언에 반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



“흠…”

 

“뭘 고민하는 거야?”

 

“그래. 팔자.”

 

윤은 나를 설득하는데 훨씬 더 시간을 많이 필요했을거라 생각했는지 약간 놀란 얼굴이었다.

 

“정말?”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우선이지 이 집이 아니야. 아버지도 이해해 주실거야.”



그때였다. 

 

-띵동띵동

 

집 초인종이 울렸다.

 

나가보니 낯선 외국인들이었다.

 

“아 2동 816호 집주인 되시나요?”

 

맨 앞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파란 눈의 금발의 50대 중년 아저씨가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진양 공인중개사 알렉세이

 

“네? 공인중개사요?”

 

외국인이었다.

 

“네. 집 매물로 내놓으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마침 손님이 있어서.”

 

그의 뒤에도 역시 금발 머리의 190cm정도 되는 호리호리한 키의 외국인 남녀가 서있었다.

 

“맞긴 한데요. 그런데… 방금 10분전에 여자친구가 전화한 거 같은데.”

 

“아! 그럼 다행이네요. 잠깐 안으로 들어가서 집 좀 둘러봐도 될까요?”

 

중개사와 외국인들은 내가 잠시 갈등하는사이 현관문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옆으로 비껴났다.

 

외국인들이 집 안을 둘러보는 사이 중개사가 나와 윤에게 말했다.

 

“이 분들은 러시아에서 온 부부인데 외교관 공관에서 요리사로 일한다고 하네요. 집이 필요해서 급하게 알아본다고 해요.”

 

“그래요? 보통 공관에서 일하면 그 곳 안에 숙소가 있지 않나요?”

 

알렉세이가 내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요리사를 많이 뽑아서 숙소가 모자른가…”

 

그 사이에 러시아 부부가 중개사에게로 와서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세이가 말을 이었다.

 

“좋아요. 러시아 부부가 계약하고 싶다고 하네요.”

 

“네?”

 

당연히 놀랄 수밖에. 무슨 여자친구가 전화한지 10분만에 손님이 들이닥치고 계약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 잠시만요. 좀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아. 지금 이분들 급해서 망설이시면 그냥 가실 수 있어요.”

 

중개사의 협박에도 내키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저도 이 집이 팔리면 다른 살 곳을 알아봐야 하잖아요. 아직 다음 집도 알아보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계약을 하게 되면...”

 

그 순간 이상한 점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근데 아직 매물 가격도 안 말했는데 계약을 하나요?”

 

그 순간 갑자기 당황한 중개사와 러시아 부부. 

 

어색하게 웃으며 중개사가 빠르게 수습을 했다.

 

“아하하하하. 뭐 시세라는게 있지 않나요? 이 분들은 지금 공사 지원을 받는 거라 자금이 타이트하지 않거든요.”

 

“그 시세가 얼마죠?”

 

“3억 정도 하죠. 여기 아파트 이 평형은.”

 

“그럼 3억에 사겠다는 거예요?”

 

“네. 맞습니다.”

 

“흠…”

 

혹시 사기꾼들은 아닐까? 뭔가 이상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럴 때는 일단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망설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외국인 부부가 알렉세이에게 러시아 말로 뭐라고 했다. 그리고 알렉세이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계약금없이 바로 3억을 지금 완납할게요. 그리고 다른 집을 알아보시는 동안 머무를 수 있는 호텔의 숙박비도 대신 내겠답니다.”

 

“우와! 그럼 신라호텔 같은 곳에 머물러도…”

 

감격하는 여자친구의 입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내가 호구라도 이정도 특혜는 사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호텔비를 낼거면 지네들이 머물면 되지 않은가.

 

“죄송합니다. 좀 더 생각해볼게요.”

 

“6억”

 

“네?”

 

“혹시 금액 작아서 그런거면 6억에 살게요.”

 

“우와! 오빠 하자 계약. 6억이면 그래도 대출끼고 서울 변두리 신축은 살 수 있어!”

 

나 역시 순간 Yes를 외치고 싶었지만 다행히 내 이성이 욕망을 막아냈다. 계속 사고 싶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세 명을 간신히 현관문 밖으로 내보냈다.

 

현관문을 닫기 전에도 러시아 부부는 알렉세이를 통해 계속 사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내일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 꼭 받으세요.”

 

“네. 네.”




여자친구는 방금 전 일련의 과정을 보고 약간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야. 오빠 집 먼데.”

 

“나도 몰라. 왜 이러는 지.”

 

나는 쇼파에 걸터 앉았다.

 

“잠시만 좀 생각을 해보자. 이 상황이 왜 일어나는지.”

 

라고 말을 하자마자 또 띵동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고 나가니까 이번엔 검은 색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백인과 흑인 두 명이 서 있었다. 

 

“누구시죠?”

 

-Real Estate Agent 매튜

 

흑인이 자신을 매튜라고 소개했다.

 

“집 퐈신다고 해서요우.”

 

“저희는 한 부동산에게만 전화드렸는데요.”

 

“아. 저희뀌린 고객 정보가 다 겅유되거든요우.”

 

결국 맨인블랙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백인의 이름은 도날드라고 했다.

 

“왜 저희 집을 사시려는 거죠?”

 

“아 이 분은 MIT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교수님인데요우. 이번에 서울대에 자리가 있어서 왔어요우.”

 

그리고 예상한대로 설렁설렁 둘러본 백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 고객분이 마음에 든다고 하네요우.”

 

“얼마에 사려는 거죠?”

 

“오우. 얼마에 파시는 거조우?”

 

아니 이게 무슨 경매도 아니고… 어이없어 할 말을 잃고 있는데 윤이 답했다.

 

“10억이요.”

 

“10억이요우?”

 

“음… 아니 20억이요.”

 

“20억이요우?”

 

“네.”

 

윤이 기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튜가 백인 남자를 바라보았고 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우.”

 

“우와와와와와와!”

 

여자친구 윤이 소리쳤다.

 

당장 도장 가지고 오라는 둥, 자신이 나의 대변인이라는 둥 나서는 윤을 뒤에서 잡아 간신히 안정시켰다.

 

“내일까지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

 

등을 떠밀어 둘을 다시 밖으로 내보냈다. 

 

“혹시 다른 곳에 퐈시려면 전화주세요우. 거기의 2배 드립니다우.”

 

매튜는 자신있는 웃음과 함께 윙크를 했다.

 

문을 닫으며 나는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왜 안판다는 거야? 20억이라고! 여기가 강남도 아니고!”

 

화가 난 윤의 공격적이 말투에 뒤로 두 세 걸음 물러나며 내 의견을 말했다.

 

“그런 과가 없어.”

 

“응?”

 

“서울대는 애니메이션과가 없다고.”

 

“아…”

 

그제서야 윤은 내 말뜻을 이해하고 납득이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다시 나에게 뭔가를 물으려고 반문을 하지만 나 역시 대답을 해줄 수 없어 고개를 저었다.

 

“아부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늘 든든했지만 결코 친해질 수 없었던 낯선 그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아부지. 도대체 우주의 끝이 먼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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