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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2화)

by 슈퍼런치박스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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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결혼해서 살 집은 무조건 신축

 

 

 

 

여자친구 윤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한강이 보이는 여의도 오피스텔을 예약해서 미리 100 송이 장미를 벽장 안에 세팅해놓고, 은은하게 어두운 조명아래 현관에서 거실의 식탁까지 50개 정도 촛불을 이어서 켜두었다.

 

그녀를 오피스텔로 부른 후 함께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내가 뭘 할지 예상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3년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들어 하나씩 보여주니 어느새 눈물이 글썽글썽.

 

마지막에 장미꽃과 반지를 건네주었다.

 

“나랑 결혼해 줄래?”

 

당연히 Yes라고 할 줄 알았지.

 

“오빠 마음은 알겠고… 사실 나도 좋아. 그런데…”

 

하지만 망설이는 얼굴의 윤은 단서를 붙였다.

 

“결혼은 그냥 둘이서 덜컥 하는 게 아니잖아.”

 

-아니었나? 혼자 해외에서는 여러명의 남녀가 함께 결혼을 한다고는 하더라…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면서 그녀는 여러가지 서류를 나에게 준비해오라고 했다. (물론 자신도 준비한다고 했다.)

 

-3년치 회사 원천징수 영수증

-국세, 지방세 완납 확인서

-신용평가 점수 확인서

-현재 은행/주식 잔고

-3년치 건강검진 결과표

 

그 밖에 아내에게 바라는 여러가지 항목들도 리스트를 적어 달라고 했다. 만약 적지 않고 추후 협상을 할 시에는 타협이 어렵다고 했다.

 

흠…

 

-원래 이런 여자였다. 그걸 알고 결혼하는 거다.

 

-원래 이런 여자였다. 그걸 알고 결혼하는 거다.

 

-원래 이런 여자였다. 그걸 알고 결혼하는 거다.

 

너무 로맨틱한 반응만 상상했나보다. 약간의 충격을 받은 나는 내내 이렇게 자기 암시를 하고 그녀가 원하는 서류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커피숍에서 만났다.

 

우리는 각자의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녀는 내 서류를 훑어본다음 마치 은행직원처럼 건조하게 사무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예상했던만큼 저축도 하고 신용점수도 잘 관리하고 특이사항은 없네.”

 

“그렇지 머. 내가 사기꾼도 아니고.”

 

“알았어. 이정도면 프로포즈는 오케이.”

 

오예. 일주일만에 오케이를 받았다. 

 

“그런데 여기 작년 건강검진 기록을 보며 오빠 비만도가 높아. 결혼전에 좀 줄여봐.”

 

피차일반이라고 말하려다 싸울 거 같아서 그만두었다. 이럴 때는 머리보다 입의 반응이 느린 내 성격이 참 윤과 잘 맞는다 싶다.

 

“알았어. 하나뿐인 결혼식 사진 잘 나오려면 살 좀 빼자.”

 

뭐 이렇게 청유문으로 그녀도 빼야한다는 것을 소심하게 돌려말하는 정도.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요청할 사항들은 적어왔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각해봤는데 그냥 너 있는 그대로가 좋아서 별 불만이 없거든.”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알겠는데… 실제 우리가 같이 살면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니까 부딪히는 일이 있을거잖아. 그런 것을 미리미리 생각해서 조율해야해.”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적은 요구사항 종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1) 월급관리는 아내가 한다.

(2) 오빠는 한달에 교통비+통신비+점심값+10만원의 용돈을 받는다.

(3) 각자의 경조사는 각자 비용으로 부담한다.

(4) 명절 제사 준비는 최대한 협조하지만 오빠도 동등하게 일해야 한다.

(5) 결혼 후 혼인신고는 바로 하지 않고 1년의 유예기간을 둔다.

(6) 1년간은 신혼생활을 위해 피임을 한다. 

(7) 1년 후 아이는 한명을 낳고 남녀 구별하지 않는다.

(8) 종교는 서로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

(9) 관계는 일주일에 1회만 가능하며 각자 거부권을 사용할 수 있다.



“알았지? 이런 식으로 오빠도 자세하게 적어오란 말이야.”

 

“그… 그래.”

 

그녀가 쓴 내용을 훑어보면서 나도 이정도로 세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뭔가 굉장히 후회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때. 내가 적은 요구사항 중에 쟁점이 될만한 사항이 있어?”

 

“흐음…”

 

모두라고 말하면 아마 프로포즈 Cancel이겠지? 나는 내적인 갈등에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기다 이내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문제될 건 없을 것 같아.”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적은 건 다 평범한 여자들이 생각하는 사항이라고.”

 

그녀가 처음으로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래서 현재 우리나라 결혼이 갈수록 늦어지고 출산율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라고는 주장 할 수 없었다. 나는 겁이 많았다.

 

“아참!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거.”

 

“응. 또 뭐?”

 

“집은 어떡할거야. 우리가 살 집 말이야.”

 

“그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 혼자 사는 집이니까.”

 

“그 집 싫어!”

 

예상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50년도 더 된 집이잖아. 주차공간도 없고. 동네도 마음에 안들어. 밤이 되면 조명도 없고 사람들도 돌아다니지 않고. 이왕이면 대출 받아 깨끗한 신축에서 살자. 자이나 레미안은 아니더라도 신축 아파트. 알았지?”

 

“안돼.”

 

“응?”

 

“안된다고.”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 그래 나도 알고 있다. 그녀에게 나는 언제나 Yes맨이였으니까.

 

처음이다. 처음으로 안된다고 말했다.

 

“미안해. 우린 그 집에서 살아야만 해. 인테리어를 다시 해도 좋고, 주말마다 여행을 핑계로 호텔을 예약해도 되지만 전입신고는 반드시 그 집에서 해야해.”

 

“그게 무슨 말이야. 오빠.”

 

“그게 아버지 유언이야. 그 집을 상속받을 때 절대 팔지 말고 그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왜? 왜? 그 집이 뭐 재건축이라도 된데?”

 

“절대. 사업성이 안나와서 절대 재건축 못하는 아파트야.”

 

“그럼 아버님이 그렇게까지 강요하신 이유가 뭔데.”

 

나는 길게 한숨을 쉬면서 생각에 잠겼다. 나도 이해하지 못한 걸 윤에게 납득시켜야 하다니.  내키지 않았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아파트는  우주의 끝이라고.



윤은 내가 말 장난하는 줄 알고 몇 번이고 되물었고 나는 진지한 얼굴로 계속 똑같은 답을 해주었다.

 

“에이… 그게 뭐야. 우주의 끝이라니.”

 

“나도 처음엔 너와 비슷한 반응이었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잖아. 지구 옆에 화성도 있고, 태양계를 넘어서는 다른 항성도 있는데 왜 지구안 대한민국 그 안에 서울 그 아파트가 우주의 끝이라는 거야?”

 

이런 식의 접근은 색달랐지만 나 역시 아는 것은 없었다.

 

“모르지. 다만 네가 생각하는 공간의 범주는 4차원인 거고, 아마도 우주의 끝이라고 말하는 것은 더 고차원적인 이야기야. 11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주를 포함하는 전체 차원에서는 정말로 우리 아파트가 세상의 끝이라는 거지.”

 

라고 아부지가 말했다. 

 

그것은 마치 빅뱅과 같아서 처음 한 점에서 시작된 우주가 4차원에 사는 우리의 관점에서는 점점 넓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고차원에서는 빅뱅일때도 지금과 다름없는 동일한 크기의 평온한 우주였다는 것이다.

 

라고 아부지가 말했다.

 

윤은 경악했고 또한 여전히 납득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은 신혼집과 관련된 조그마한 마찰때문에 약간의 조율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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