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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8화)

by 슈퍼런치박스 202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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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경험상 시간을 끌어서 좋은 건 없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바로 지구와 통화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윤은 생각보다 일찍 퇴근해서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응? 오늘 회식이라고 하지 않았아?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닌 것 같은데 벌써 온거야?”



“응. 몸이 좋지 않아서 매니저에게 말하고 바로 조퇴했지.”



“감기야? 병원은 가봤어? 내가 저녁 준비할테니까 그냥 침대에 누워있어.”



그녀는 부끄러운 듯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좀 몸이  으스스하긴 하지만 감기는 아닐 거 같아.”



그리고 바로 나에게 무언가를 건네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임신테스트기였다.

 

그것도 붉은 색 두 줄이 명확히 그어져 있는…

 

나는 한 1~2초 동안 어떻게 반응해야 자연스러울지 잠시 생각을 했다.



“와우!”



“뭐야? 그런 시덥지 않다는 반응은.”



흠. 아무래도 오답인 거 같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급격하게 큰 기쁨이 밀려오니까 갑자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되지 않아서.”



“기쁜 건 맞지? 우리 아이잖아.”



“물론이지. 내 아이인데 왜 안 기뻐.”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었다. 

 

윤은 약간 새초롬해졌지만 더 집요하게 닥달하지 않았다.

 

물론 기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지만 임신통보를 받은 직 후 내 머리속에는 뭔가가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안락한 신혼생활은?

 

한 명은 더 먹여살리려면 돈을 얼머나 더 벌어야 하지?

 

나는 아이를 좋아할 수는 있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예측할 수 없게 갑자기 현실이 되었다.

 

굳이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임신은 몇 년뒤로 미뤄두고 싶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 그녀의 배쪽으로 끌어당겼다.



“신기하지 않아? 한달전이랑 똑같은 배인데 지금은 다른 생명이 들어 있다는 것이.”



“응. 물론이지. 자기야”



나는 로봇처럼 어색하게 간신히 대답을 하는 수준이었다.



원래 이 날 저녁을 위해 기성 소스를 이용해서 크림 스파게티를 해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윤의 간곡한 주장에 나는 인터넷에서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가장 가까운 매장을 찾은 다음 그곳에 가서 2~3배 더 비싼 값을 주고 브로콜리와 감자, 유기농 우유 등을 사왔다.

 

그리고 진득한 크림을 만들어서 제대로 고소한 크림 스파게티를 만들어냈다.

 

고맙게도 윤은 맛있게 내 요리를 먹어주었다.

 

그녀는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배속의 아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겼을까, 성격을 어떨까 등등 계속 궁금한 것을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녀도 모르는 것을 나도 알 턱이 없지만 최대한 상냥하게… 아이는 윤을 닮아 상냥하고 얼굴은 달걀형에 눈은 부리부리할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같이 목욕을 했고, 같이 누워서 잠이 들기 전까지 그녀는 계속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어차피 이 세상에 나오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뭐가 그리 궁금한거야… 라는 투정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이 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같이 산부인과에 다녀오자고 했다.



“나 집에서 잠깐 할 게 있는데 혼자 다녀오면 안 될…”



지구에게 빨리 제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전날 윤이 계속 옆에서 말을 거는 바람에 결국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큰둥하게 혼자 다녀오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안돼. 이 중요한 순간은 나 혼자 가라는 거야? 내가 무슨 미혼모야?”



“아… 아니지.”



“얼른 준비해. 이 근방에서 유명한 곳이라 간신히 시간 예약한거란 말이야.”



그래서 옷 차려 입고 차를 몰고 병원 앞까지 간다음 기계식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병원안에 들어가 1시간을 기다린 후 (예약을 했다는데 왜 우리 앞에 손님은 그리 많은 지) 10분 정도 동그란 안경을 낀 여의사와의 시간을 가졌다.

 

청진기로 아이의 심장인지 엄마의 심장인지 두근 두근 뛰는 것을 들이며 검은색과 흰색으로 혼합되어 있는 초음파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축하합니다. 임신 맞아요. 이제 4주 지나가는 것 같네요.”



역시 의사는 의사다. 나는 도무지 봐도 잘 모르겠더라.



“성별도 알 수 있나요?”



내 말에 여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건 가임기가 14주 이상 지나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의사가 환자에게 성별을 알려주는 것은 불법이라서 알려드릴 수도 없어요.”



“네.  성별에 맞게 장난감을 사놓으려 했는데 참아야 겠네요.”



폴라로이드 초음파 사진을 영광스럽게 건네 받고 우리는 다시 병원을 나와 기계식 주차장에서 차를 찾은 후 차를 타고 근처에서 브런치로 맛있다는 유기농 샌드위치 집을 찾아갔다.

 

유기농 샌드위치와 유기농 아이스 커피는 맛은 있었다. (어쩌면 비싼 가격때문에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밥을 먹고 윤과 함께 근처에 있는 청계천을 걸었다.

 

걷다가 대형마트가 보여서 거기에 들어가 아기용품 판매점을 구경했다.

 

윤이 앙증맞은 남색 유아용 신발을 만지작거리며 문득 말했다.



“그런데 아들같아.”



“왜?”



“꿈속에 흰색 물범이 나에게 안겼는데 고추가 있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남자애가 맞네.”



집에 돌아와 씻고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먹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하루가 다 갔고 이 날도 우리는 계속 아이 이야기를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은 이른 아침부터 시골에서 KTX를 타고 우리 집을 찾아온 장모님과 장님어른때문에 또 정신이 없었다.



“우리 딸! 대견하다. 그 조막만하던 게 이제 엄마가 되다니.”



가끔 나에게도 철권 지르기를 하는 윤의 강인한 공격력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장인어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탁서방. 이것 좀 받게. 내가 우리 딸 쒀 주려고 찹쌀이랑 미역이랑 이것저것 사왔네.”



장모님이 건네준 보따리를 받아서 싱크대 아래 간신히 내려놓았다. 딸사랑이란 대단했다. 3~40킬로는 될 것 같은 무게. 이 무거운 것을 시골에서부터 들고 오시다니… 

 

함께 밖에 나가 점심으로 한우 정식을 먹었다. 물론 돈은 장인어른이 축하의 의미로 내셨다.

 

그리고 또 같이 집에 돌아와 함께 TV를 보며 아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서로가 바라는 이야기를 했다.

 

늦은 저녁 두 분이 돌아가시고 우리는 또 씻고 집안을 정리한 후 잠이 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주말이 게눈 감추듯 사라져 버렸다.



***



월요일 회사에 나가 여느 월요일처럼 권태로운 일상을 이겨내며 일을 했다.

 

마음속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사실 지구에게 바로 전 주 금요일 집에 오자마자 통화를 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뭐… 그 솔라시도라는 프로젝트를 하루 이틀만에 그린피스가 망가트리지는 못하지 않을까?

 

며칠 지나지 않았으니 이 날 월요일 저녁 먼저 집에 돌아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도 퇴근 전 나를 붙잡는 매니저나 고객사의 전화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직 윤은 퇴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말설임없이 지구와의 통신을 시작했다.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그리고 이상하게도 지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마 이때는 지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45억년을 무덤덤하게 살아온 친구였다.

 

갑자기 며칠사이에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도 지구에게도 전화를 받지 못하는 나름 바쁜 일이 있을거라고 합리화했다.

 

다른 뉴페이스 행성과 연애를 시작했거나… 

 

아니면 엄마 행성의 심부름 중이거나… 

 

도서관에서 기말시험 공부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이건 인간 입장에서 가능한 상상이다. 

 

아무튼 뭐던 간에 지구 입장에서 가능한 여러가지 바쁜 상황이지 않았겠는가?

 

자살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어디 SF에서나 나올만한 그런 이야기니까.



***



다음날 저녁에도 지구와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목요일은 좀 색달랐다.

 

내가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 이미 김아무개씨가 초조한 얼굴로 현관문 밖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 다행이군요. 집으로 돌아 오다니.”



“당연하죠. 여기가 제 집인데요.”



“저희도 급하게 알게 되어서 혹시나 JJ 당신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많았거든요.”

 

항상 공손하게 JJ님이라고 경어를 써왔던 김아무개씨가 의외로 JJ 당신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 미묘한 단어의 사용에 나는 약간의 적의감을 느겼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일단 안타까운 말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뭐죠?”



“지구가 살해당했습니다.”



“네?”



김아무개씨는 더 이상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 김아무개씨 뒤에서 불쑥 두 명의 경찰이 나타났다.

 

그들은 내 왼팔과 오른 팔을 못 움직이게 각각 붙잡았다.



“그리고…”



김아무개씨는 내 손목에 은빛 철제 수갑을 능숙하게 채웠다.



“이 시간부터 JJ 당신을 체포합니다. 혐의는 지구 살해 용의자인 제니와 그녀의 단체인 그린피스와의 결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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