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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7화)

by 슈퍼런치박스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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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이제 햇빛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내리쬐지 않는다



 

다음날 나는 김아무개씨를 만나기 위해 시청에 갔다.

 

그는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자고 했다. 

 

자신이 산다면서 식권 두개를 내밀었다.



오늘의 메뉴는 오리고기 쌈밥이었다.

 

스테인레스 식판에 오리고기와 쌈야채를 담았다. 그리고 밥과 쌈장도 담았다.

 

시끌벅적한 주변 소음을 뒤로 하고 우리는 외딴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쌈밥은 맛있었다. 

 

나는 입안에 고기를 우걱우걱 씹어 넣은 후 사실 이제까지 지구와 통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김아무개씨는 내 말을 듣고 그다지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아… 알고 있었군요.”



“당연하지 않나요? 지구 통신은 꽤 전력소모가 많이 들거든요. 그리고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지구와 JJ님의 대화는 모두 도청이 되고 있었습니다.”



“좋아요. 그럼 더 시시콜콜하게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나는 지구가 자살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역시나 그는 내 말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에게 고통을 주는 그 행위를 당장 그만둬야 해요. 지구가 알려준 좌표를 찾아보니 지구 구멍을 내는 그 장소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그 순간 그가 내 입을 막았다.



“쉿 조용히 해요.”



“네?”



“지금 말하는 건 다 대외비입니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기밀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로 JJ님은 access하면 안되는 기밀이에요. 아무리 우리의 VIP라도 JJ님에게 권한을 줄 수 없어요.”



김아무개씨는 기민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밥을 먹어요.원래  커피는 부서 다과실에 있는 믹스커피로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좀 시청 외곽을 돌면서 산책을 해야겠네요..”



밥을 다 먹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밥을 다 먹고 구내 식당을 빠져나왔다.

 

시청 외곽을 빠져나와 덕수궁 돌담길쪽으로 걷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10미터 이내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결국 참을 수 없어 다시 물었다.



“도대체… 미국이 지구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죠?”



“흠… 글쎄요.”



김아무개씨는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답변을 듣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아까 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일단 JJ님이 말한 프로젝트는 저도 잘 모르고, 알아도 답변을 할 수가 없어요.”



“그 프로젝트라는 것에 한국도 포함되어 있나요?”



“글쎄요. 그 것 역시 답변하기가 어려워요. 다만…”



“다만…”



“JJ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경제 공동체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라고 알고 있어요.”



그 뒤로 어떻게든 정보를 알아내려고 했으나 김아무개씨는 정말 아는 게 없는지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이미 덕수궁 돌담길을 다 돌았고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나는 다시 한번 당부를 했다.



“지구가 자살하지 않도록 그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고 분명히 전달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그 말의 무게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영화 속 첩보원이 된 양 중요한 기밀을 전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한 나는 이미 약간 맥이 빠졌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집까지 3정거장이었지만 머리도 식힐 겸 터덜터덜 걸어갔다.

 

과연 김아무개씨는 지구의 자살을 농담으로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지구가 자살을 정말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막을 수 있는 자신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자살을 하더라도 실제 지구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걸까?

 

애초에 정보가 많지 않은 나는 아무런 추론을 할 수가 없었다.



“저기요.”



길 가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20대 중반의 검은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단발의 통통한 여자였다.



“혹시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 네? 저요?



딱봐도 ‘도를 아시나요’였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신 거 같아서요. 혹시 제가…”



“조상신이 노여워해서 그런 건가요?”



“네?”



대뜸 정곡을 찌르니 당황하는 그녀.



“제사를 지내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 그쪽 따라가면.”



그런데 그녀는 이내 당혹감을 감추고 씨익 웃었다.



“네. 머 제사를 지내신다면 조상신이 좋아는 하겠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구요.”



나는 손을 훼훼 내저었다.



“죄송해요. 지금 바쁜 일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녀를 뒤로 하고 바쁘게 걸어가려는 찰라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구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 방법이 있어요.”



너무나 놀라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그걸…”



그녀가 씨익 웃으며 약간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자 이제 저랑 이야기할 마음이 좀 들었나요?”



***

 

우리는 근처 투썸플레이스 커피숍에 들어갔다.

 

커피를 시키고, 마침 내가 생일선물로 받은 5만원짜리 쿠폰으로 계산을 했다.

 

주문받은 머그컵 커피 2 잔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너무 뜨거워 호호 불며 커피 한모금을 마셨다.



“제 소개를 하죠. 저는 그린피스의 제인이예요. 그리고 당신은 JJ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도 지구의 자살을 알고 있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일중에는 대외적으로 하는 활동도 있고 약간의 첩보활동도 있어요. 그래요. 우리도 도청을 하고 있었어요.”



단순히 지구와 오붓하게 나누었던 대화들이 여기저기 도청이 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좀 기가 찼다.

 

하지만 평범한 개인간의 사적인 대화라고 하기엔 대상이 워낙 유니크하고 abnormal하니 뭐 하찮고 미개한 내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 프로젝트의 이름은 솔라시도예요.”



“네?”



“지구 외핵에 가공된 물질을 주입하는 일 말이예요.”



“아…”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면 이 그린피스의 첩보 영향력은 굉장히 넓고 촘촘한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럼 나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지구가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고통을 주는 그런 위험한 일을요.”



“왜겠어요.”



제인이 커피를 호르륵 마셨다. 



“자신들에게 확실히 이득이 되니까요.”



“자신들이라면 누구죠?”



“G7이요.”



“G7이요? 뉴스 기사에서 보는 G7이요?”



“네.”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G7이라면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를 말했고 뭐 그냥 전세계 패권을 잡고 있는 강대국들이었다.



“그들이 왜…”



“솔라시도 프로젝트의 기본 의도는 지구의 자전축을 변경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분위도에 위치한 자신들의 나라에 더 많은 천연 태양에너지를 공급하려는 거죠.”



나는 커피를 마시다가 정말 만화처럼 풉하고 쏟으려는 것을… 간신히 입으로 막았다.



“네?”



제인은 쟁반 위 딸려나온 냅킨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은 북극과 남극에 부족한 태양열때문에 빙하층이 있고, 적도가 가장 비옥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자전축을 이렇게 눕히게 되면 적도에 빙하층이 생기고 북위도 중간 지점에 가장 많은 태양열을 공급받게 되는 거죠.”



나는 턱을 괴고 그녀가 그림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들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힘이 있는 강대국만 태양빛을 온전히 쬘 수 있을 거예요.”



“미친 짓이네요. 그런데… 솔직히 우리나라도 북위도니까 나쁘지만은 않은데요.”



“맞아요. 그래서 한국 정부도 이 솔라시도 프로젝트를 알고 있으면서 크게 반대를 하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G7은 자전축도 변경하는 기술력 이외에도 자전속도도 컨트롤 하려고 해요. 만약 그것까지 성공한다면…”



나는 나의 상상력을 너머서는 그녀의 말에 연실 헛웃음이 나왔다.



“굳이 함께 경제 공동체라고 느끼지 않는 북위도 국가들이 아침이 될 때는 자전속도를 빠르게 하고 G7에 해당될 때만 천천히 자전을 하여 더 많은 태양에너지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정말 미친 짓이에요.”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하죠.”



그녀는 내 손을 움켜 쥐었다.



“JJ님. 당신이 할 일은 명확해요. 현재 지구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으니까요.”



그녀의 손은 그녀의 얼굴과 다르게  차갑고 거칠었다.



“지구에게 잘 설명을 해주세요. 그린피스가 조만간 솔라시도 시스템을 파괴할거라고. 그러니 자살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흠… 그정도야.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갑자기 특수부대에 합류해서 목숨을 건 잠입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했지만 단순히 지구를 안심시키고 단도리하라는 것이었다.



“네.”



나는 지구인의 사명을 가지고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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