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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9화)

by 슈퍼런치박스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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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지구가 살해당한 후



 

내가 지구를 살해했다니!

 

뭐라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마음 한 구석 켕기는 것이 있었다.



100%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나 역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지구가 자살할 정도로 아프다고 했는데도…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나는 체포된 채 1층에 대기한 경찰차 뒷자석에 김아무개씨와 함께 탔다.

 

우리가 탄 차가 미끄러지듯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김아무개씨에게 물었다.



“정말 지구가 살해당했나요?”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창가 너머로 보이는 평온한 저녁의 퇴근실 행인들의 모습에 역시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우리는 이미 다 공중분해 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 머리속에서의 죽음이란 “펑!”하고 행성이 터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SF영화속에서나 일어나는 그런 일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유의미한 재앙이 일어날 겁니다.”



“그게 뭐죠?”



“생명력을 잃어버린 지구의 코어는 더 이상 자전과 공전을 하지 않고 이대로 천천히 식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지구위에 사는 우리 생명체들은…”




김아무개씨가 말 끝을 흐리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했다.



“휴우… 저도 모르겠어요. 전혀 감이 안잡히네요. 과연 우리 인간들이 살아남을 수가 있을지.”



만약 지구가 폭파되는 게 아니라면… 그리고 태양 에너지를 한쪽 면이지만 흡수할 수 있다면 

그래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삶은 이제껏 누려왔던 평범한 날씨와 바람 그리고 하늘과 함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그의 말에 숙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 없이 5분 정도 있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일단 형식적인 심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산 근처 안기부 건물로 갈 예정입니다.”



보통 영화에서라면 범죄자의 질문에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 답변하지 않겠지만, 김아무개씨는 성격이 꼼꼼한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아직 인간적인 배려를 하는지 성의껏 답변을 했다.



“아… 안기부 건물이라면 물고문을 하는 건가요?”



그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딱히…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방식이라서요.”



순간적으로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 김아무개씨.

 

-쾅



“악!”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큰 충격이 느껴지면서 몸이 잠시 붕 떴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튕겨져 나가지 않았다.

 

차사고가 난 것이다.

 

앞을 보니 파란색 봉고차가 옆으로 끼어들면서 경찰차를 추돌했다.

 

그리고 어수선한 틈을 타서 봉고차 문이 열리더니 안에서 검은색 스타킹으로 복면을 한 몇명의 사람들이 총을 들고 내렸다.



“어라. 이게 무슨 상황…”



경찰차 뒷문을 강제로 열고 그들 중 한명이 강제로 나를 끄집어 내려고 했다.



“안돼!”



“움직이지마!”



 그들은 만류하는 김아무개씨를 강제로 압박하면서 총으로 위협했다.

 

김아무개씨는 몸에 밴 보수적인 공무원 기질때문인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무리하지 않았다.

 

나는 한 눈에 보아도 상황이 더 바빠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안전하게 합법적인 안기부에 가려고 했는데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봉고차에 탔고, 문이 닫히고 봉고차는 출발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차 안에서 모두 나처럼 침묵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우리는 어느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우리 앞에는 대기하고 있던 다른 은색 봉고차가 있었다.



“자 내려서 다른 차로 갈아 타요!”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은색 봉고차로 갈아탔다.

 

그리고 그 익숙한 목소리의 여자는 쓰고 있는 스타킹 복면을 벗었다.

 

제인이었다. 



“제인!”



우리를 태운 봉고차는 또 건물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당연히 알고 있겠죠? 지구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내 말에 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제인과 그린피스가 그런 짓을 한 건가요?”



내 말에 제인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아니죠. 설마 정말 정부의 말을 믿는 건가요?”



“그럼 누가 그런 짓을 한거죠? 설마 G7…?”



“맞아요. 그들 짓이에요. 그들이 솔라시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 사고를 내고 지금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는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 화면으로 비밀 인공위성에서 찍었다는 사진 몇 개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공장시설이었는데 몇 초의 간격으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긴 미국 샌디에고예요. 그리고 그들의 솔라시도 프로젝트의 지하 착굴 공장이 있던 곳이죠. 그런데 이곳이 어제 미국 퍼시픽 시간 기준 오전 9시 즈음에 폭발했어요.”



제인 옆의 더 락의 덩치를 닮은 흑인 남자가 말을 이었다.



“자전축 컨트롤에 실패한 걸로 보입니다.”



그것은 마치 의사(G7)이 수술방에서 환자(지구)를 침대위에 눕히고 마취를 한 다음 두개골을 열고 뇌수술을 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지금 환자가 수술의 실패로 바이탈 사인이 멈춰 버렸다.



“오 하느님 맙소사… G7 그 자식들은 도대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나는 모호하게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우리에겐 아이가 생겼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잔인하게 난자되어 죽은 지구의 몸뚱아리 위에서 그 사체를 영양분삼아 구더기처럼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



“제기랄…”



너무나 미안했다.

 

아무런 잘못없이 그저 태어나기만 하는 생명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우리 인류는 이렇게 자멸하는 군요.”



자조섞인 내 말에 의외로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들은 이미 다른 계획이 있어요.”



“다른 계획이요?”



“네 도미솔도 프로젝트. 다시 돌아온다는 1도 화음의 의미죠.”



“그건 뭐죠? 혹시 지구에 심폐소생기를 대고 다시 되살리는 프로젝트인가요?”



“도미솔도 프로젝트의 다른 별명은 노아의 방주, 인터스텔라 프로젝트라고도 합니다.”



나는 이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를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말하는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또다른 지구가 있군요.”



“맞아요. 태양계 너머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행성을 찾아냈어요.”



“그럼 인류는 살 수 있는 건가요?”



이번에는 다시 고개를 젓는 그녀.



“그들만의 계획이예요. 현실적으로 모든 인류가 다 새로운 지구로 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들이 미리 내정한 일부만 몰래… 조용히… 이전할 겁니다.”



그렇다. 나는 그녀의 말이 뜻하는 의미를 되뇌었다.

 

모든 인류가 다 구조될 수 없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다.



“그래도 대단하네요. 인류는 벌써 태양계 너머로 우주여행이 가능할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다시 고개를 젓는 그녀.



“우주여행은 없어요. 우리에겐 아직 광속 비행이나 공간 워프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력은 없답니다.”



“그럼…?”



“정답은 늘 우리 주변에 있어요. 알잖아요. 우주의 끝.”



“우주의 끝.”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지금 이순간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우리 집이 바로 우주의 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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