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12화)

by 슈퍼런치박스 2024. 2. 7.
반응형

우리 집이 우주의 끝(소설 12화)



우리 집이 우주의 끝

 

부제 : 나는 그래도 윤을 사랑하나봐



 

윤이 떠나고 한달이 지났다.

 

그리고 그린피스는 예정한대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구 사망소식을 전세계에 전했다.

 

하지만 이 파장은 예상외로 크게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유는 한달을 예상했던 지구의 멈춤이 실제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전이 하루에 30분 정도 느려지기는 했지만 바이오 리듬이 깨질 정도는 아니었다.

 

또 어느 날은 다시 1시간 정도 빨라지면서 원래 자전주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솔라시도 프로젝트의 영향인 거 같아요.”



제인은 이 현상에 대해서 이미 나름대로 답변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이야기했다시피 G7의 솔라시도 프로젝트를 통해 지구 자전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강제로 지구 외핵에 에너지를 주입해서 인위적으로 자전과 공전을 진행하고 있는거죠.”



“인위적이라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겠군요.”



“맞아요. 간신히 진행하고 있지만 분명 데드라인이 있어요. 겨우 몇개월, 늦어도 일년 이내일 것 같아요.”



그래.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뭔가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나를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신체리듬이 불안정해지면서 잠을 깊게 잘 수 없었고 이런 불안한 증상이 날이 지날수록 더 했다.

 

지구는 곧 멸망한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아마도 다 멸종할 것이다.



그 후 또 며칠이 지났다.

 

제인은 그린피스의 첩보정보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윤이 816호의 다락방을 통해 또다른 지구 R2로 갔다고 했다.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나를 떠난 것은 그녀의 자유의사일 것이다.

 

왜냐하면 배속의 아이인 꿀벌이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나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처음 그녀와 연애를 할때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데이트 할 때 식당, 놀 곳 등등을 항상 본인 위주로 결정하고 나는 그저 따라야만 했다.

 

결혼을 할 때도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연인의 대화가 아니라 마치 공적인 회사끼리 계약을 하는 것처럼 계약서를 작성했다.

 

연애경험이 많지 않은 나는 그녀의 그런 행동이 보편적인 여자들의 어느정도 있는 이기주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또한 나의 의견 또한 묻지 않았으며, 자신의 선택에는 내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한번이라도 나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어보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녀의 발목이라도 붙잡을 거라 걱정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나 혼자 세상에 버려진 것 같았고 이대로 지구가 멸망해버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이메일을 보기 전까지…

 

그건 R2로 떠나기전에 보낸 윤의 메일이었다.

 

전화나 이메일 등 위치 기록이 남을 수 있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기에 아예 기존의 내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내가 너무 무료해보였을까? 

 

그린피스에서 해킹에 대비하기위해 IP를 몇차례 라우팅한 대포폰을 사용하라고 건네줬을때 나는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하고 나서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내 메일함에 들어갔다. 

 

그리고 몇 주 전에 윤이 나에게 메일을 보낸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급하게 쓰고 있어. 그들이 거짓말을 했어. 나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꼬여버린 것 같아. 이 메시지 마저 그들이 해킹해서 지워버리면 어쩌지. 오ㅃ ㅏ. 도오 ㅏ주ㅓ 오빠가 피 ㄹ오해. 나 지 그 ㅁ R2fh 끌려가 고 이 ㅆ어

 

급하게 쓴 것처럼 보이는 오타. 그건 나에게 분명 도움을 요청하는 의미였다.

 

함정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를 버리고 떠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도와달라고 하다니.

 

그런데 그럴 거면 그린피스 용인 아지트에 있을때 몰래 떠나는 게 아니라 우리를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과연 그녀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그녀는 정말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까?

 

 

 



웃기지만 도와달라는 그녀의 말 한 마디에 퍼득 정신을 차렸다.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찾아가야만 한다.

 

비록 눈앞의 그녀에게 버럭 화를 낼 수도 있지만 나는 윤을 다시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달콤한 체취를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래 나는 3년 전 처음 그녀를 만날 때부터 그녀를 너무 사랑했고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저 R2로 가야해요.”



제인을 붙잡고 두서없이 말했다.



“네?”



“윤이 뭔가 잘못된 거 같아요.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나는 R2로 가야해요.”



약간은 더 논리적으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뜬금없다는 듯한 제인의 얼굴.

 

결국 나는 이메일을 보여주면서 다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를 찾아야 해요.”



“흠… 그러니까 그녀가 지금 R2에 비자발적으로 끌려갔고 JJ씨에게 도와달라고 이메일로 요청을 했다는 거죠?”



“맞아요.”



“이게 그녀가 쓴 메일이 맞나요? 혹시 누군가 그녀의 메일로 접속해서 쓴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게…”



“혹시 메일안에 그녀만의 표시나 단어가 있어서 반드시 이 메일은 윤이 쓴거라는 증거가 있나요?”



그런 것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이 메일 하나만 믿고 무작정 그런 의사결정을 하는 건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겠죠. 나도 처음에는 의심이 들었으니까요.”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내가 먼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R2에 가야 해요. 왜냐하면 그녀가 날 버릴지라도 난 그녀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좋아요.”



나는 제인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도와줄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내가 그린피스의 아지트를 빠져나가는 것에만 동의해주면 그것으로 족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그래도 당신에게 부탁을 하려고 했거든요.”



“네? 어떤 걸요?”



그녀는 잠시 뜸을 드린 후 다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R2에 들어가는 첩보팀에 일원이 되어달라구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