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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5배속 남자의 사랑

by 슈퍼런치박스 2024.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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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배속 남자의 사랑

 

유튜브 배속설정

 

 

 

어느 순간 나는 1.5배속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속도의 기준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능력이다.



어렸을 때 부터 책을 읽는 것도 남들보다 1.5배속 빠르게 속독을 했다.

 

그 뿐인가. 유투브와 넷플릭스도 세팅에서 1.5배속도로 바꾼 후 영상을 보는 것이 편했다. 

 

당연히 이 말은 내 머리의 CPU가 남들보다 1.5배 클럭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주어진 일도 남들보다 1.5배를 더 빠르게 처리해왔다.

 

 

 

그런데 연애만큼은 1.5배속이 큰 장점이 없었다.

 

1.5배속 여자를 만난다면 모르겠지만… 살아오면서 그렇게 성능좋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

 

만약 만나더라도… 연애란 여러가지 감성적인 기호들이 결합되어 사랑으로 승화하는 것인데… 1.5배속이라는 능력  하나가 바로 사랑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30살이 될 때까지 모태솔로였다.




친구 소개로 소개팅을 했다.

 

그녀도 직장인이라고 했다. 마케팅 부서.



‘오 마케팅 부서면 머리회전이 빠릿빠릿 하겠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그녀는 평범한 1배속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좋다고 했다.

 

나는 모태솔로 였기에 연애에 대한 아무런 경험치가 없었다.

 

그래서 시험삼아 사귀기로 했다.



그 후로 100일이 지났을까?

 

일주일에 두어 번 만나 데이트를 하고 자연스럽게 스킨쉽을 하고 결국 잠자리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욕실에서 수건만 걸치고 나오는 그녀에게서 나는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그 미세한 느림의 몸짓을 1.5배속인 나는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는 0.5배속 인간이었다.

 

하지만 속았다는 것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나는 어렴풋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의 성욕도 참을 정도의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나는 모태솔로였던 것이다.



하지만 쾌락의 순간이 지나간 후 같이 베개에 누운 상황에서 무심코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0.5배속이야. 알고 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싫어?”



“아.. 아니 그런건 아니야.”



“0.5배속이 나쁜 건 아니야. 가끔 천천히 봐야 할 때도 있는 거거든.”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말은 별로 감흥이 없다.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0.5배 계왕권을 쓰는 게 의미가 있는가?

 

계왕권은 늘 배수로 올라가야 한다..

 

2배, 4배, 8배. 

 

이게 멋진 설정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동안 1배속처럼 행동을 한거야? 오늘이 아니라면 전혀 속았… 아니 아무튼 눈치를 못 챘을 건데.”

 

그녀는 내 말에 씨익 웃었다.



“그게 바로 마케팅이야. 내가 가진 속도보다 더 높게 보여지게 하는 것.”



“아…”



나는 그녀의 말을 단박에 깨달았다.



“마치… 계왕권 2배인 것처럼!”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회사에서도 나는 빠릿빠릿한 대리였다. 나보다 연차가 높은 과장, 부장, 심지어 이사도 나보다 분석처리 능력이 뒤떨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싼 똥은 언제나 내가 남아서 뒤치다꺼리를 했다. 



홀로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때문에 언제가 그렇게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기만의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홀로 사무실에 남아 기본적인 업무를 마무리한 후에… 

 

나는 틈틈이 100여개의 사업 아이디어를 일일이 엑셀에 정리했다. 마치 일본의 소프트뱅크 손정의가 처음 비니지스를 시작할 때처럼 말이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아 또 100개를 더 만들어 했다.

 

300개 정도 만들자 더 이상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 300개 중에 가장 성공 가능성과 수익률이 높은 순으로 순위를 매겼다.



1위에 랭크된 비즈니스 아이디어… 흠…

 

나는 의료와 관련된 새로운 코인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하여 닥터코인이다.

 

코인은 곧바로 연계사업을 할 수 있는 자금확보가 용이할 것 같았다.



여자친구는 그런 위험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을 걱정했다.



“괜찮아 너는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1.5배 빠른 내 능력으로 검토한 결과 문제가 없어.”



사실 코인 개발은 기술적으로는 큰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초기 빌드 및 세팅은 내가 가지고 있는 랩탑 한 대에서 충분히 작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비즈니스가 그렇듯 홍보는 랩탑 하나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돈이다. 코인을 일반인들에게 홍보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홍보에 필요한 돈을 VC 벤처캐피탈에게서 빌리고 회사의 지분을 일부 양도해주었다.



***



초반에는 이렇게 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사업이 쉽게 확장되었다.

 

병원 진료와 관련된 코인이었는데 실제 결제도 가능했고, 결제한 후에는 진료 기록을 데이터베이스 삼아 스마트병원 시스템 구축도 연계되게 만들었다.

 

환자에게는 보험비 대납도 가능하게 하고 또한 미리 코인을 사두면 높은 이율의 복리로 재투자도 가능하게 했다.

 

여러모로 병원 진료와 연계되어 만능 코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닥터코인이 유명하진 않지만 일부 해외 거래소에 상장되면 갑자기 유명세를 탔다.

 

아직 매출이 크지 않았지만 수익이 나는 상황에서 다른 VC에서도 투자를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투자 받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진리는 이미 경험상 알고 있었다.



투자받은 돈은 다시 회사자금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도 좀 반영하면서…

 

넉넉한 월급에 회사 비용으로 오피스텔과 스포츠카까지 렌트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보상이 더 큰 성과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양심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자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0.5배속 여친에게 소홀해졌다.

 

그녀가 전화를 하고 찾아오려고 해도 미팅때문에 바쁘다고 잘 만나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녀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6개월 뒤 나는 망했다.

 

갑자기 비트코인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류 잡코인인 나의 닥터코인도 갑자기 가격이 -99%로 곤두박질쳤다.

 

가치가 사라진 코인은 아무런 결제, 투자 기능을 하지 못했다.

 

당연하게 이 코인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불만과 원한을 가지고 회사를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안 그러면 고소한다고 했다.

 

성공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아가는 거지면 실패는 얼음빙판에 미끌어지듯 한 순간이었다.




갚아야 할 개인 빚이 20억이 되었다.

 

독촉자들 때문에 회사나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집도 월 30만원짜리 고시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꿈같은 6개월이었다.

 

 




우울증으로 무력해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시원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멍하니 햇빛을 쬐는 것이었다.

 

비관적인 생각도 1.5배속으로 빠르게 나를 갉아먹었다.

 

그제서야 나는 1.5배속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0.5배속 여자친구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녀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아니 비루하게 이제와 전화하기가 싫었다.



“여기… 있었구나?”



거짓말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0.5배속으로 천천히 또렷하게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정말 눈 앞에 그녀가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전화도 안받고.”



전화를 했었나? 알았으면 못내키는 척 받았을 텐데. 

 

하지만 나는 내 속마음조차 말하지 않았다.



“걱정하지마.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20억이다. 하아… 평생 월급을 모아도 갚을 수 없는 돈이다.

 

1.5배속인 나는 좌절과 고통의 감정도 1.5배의 강도로 느꼈다.



“왜 찾아온거야!”



‘너를 면목이 없어.’가 진심이었지만 실제 내 입을 통해 내뱉은 말은 퉁명스런 이 한마디 였다.



“왜 내가 찾아오면 안되니?”



“우린 이미 끝난 거 아니야?”



“정말로?”



그녀가 0.5배속의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난 한번도 그렇게 생각안했는데 우리가 끝난 사이였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반문하는 그녀를 보면서 마음이 짠해온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관계에서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어.”



“그게 뭔데?”



“그건 바로 난 모쏠인 너의 첫경험 상대라는… 읍읍…”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그녀의 입을 막았다.



“부끄러워? 왜 말도 못하게. 읍읍…”



0.5배속 여자친구가 벤치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햇빛을 쬐었다.

 

무심코 내가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응. 미안해.”



“왜 미안해?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다시 시작하자. 이번에는 나도 도와줄게. 내가 힘쓰면 계왕권 8배가 가능할거야.”



계왕권 8배라. 

 

나는 다시 피식 웃었다.

 

그런 것을 함부로 쓰게 되면 몸에 부작용이 엄청나다고 계왕님이 당부하지 않았나.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그야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천생연분이니까. 1.5 더하기 0.5 바로 2잖아. 하하하.”



‘바보. 배속을 더하면 어떡해? 곱해야지…’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순간 나는 그녀의 0.5배속 몽실몽실하고 청량한 웃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소중했기에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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