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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락사 면접 (영화 시나리오)

by 슈퍼런치박스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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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락사 면접"

 

 

정석 : 주인공. 남. 30대. 백수.




 

외관. 도시내 고층 건물의 외관 - 

나레이터 : 20xx년 정부는 늘어나는 노령인구수 조절 및 헌법에 보장된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하기 위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게 된다. 

 

나레이터 : 단 무분별한 안락사 남용을 막기위해 비생산나이(만 65세이상)가 아닌 연령에 대해서는 허용인원수를 제한하고 면접을 통해 인원을 선발하도록 하였다.

 

말쑥한 정장차림을 한 주인공 정석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건물 정문안으로 들어간다. 


건물 안 복도 -

복도에는 증명사진이 포함된 응시표를 가슴에 달고 있는 면접대기자들이 의자에 앉아 긴장된 얼굴로 대기를 하고 있다. 그 중에 주인공 정석도 포함되어 있다. 

 

접수 직원 : 김정석씨, 박민주씨 입장하세요.

접수 직원이 안내하여 주인공을 포함한 2명이 회의실안으로 들어온다.  


회의실 - 계속

 

회의실 안에는 권태로운 표정의 대머리 중년의 남자 인터뷰어(50대)가 임원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정석 등은 긴장된 얼굴로 맞은편 의자에 앉는다.

 

인터뷰어

뭐 서로 시간낭비 할 거 없구요. 간단히 말해봐요. 정부가 여러분을 안락사해야 하는 이유가 

뭔지 말해들봐요.

 

민주

(헬쓱한 얼굴로 먼저 나서서)

저는 암환자입니다. 

 

인터뷰어

(약간 놀라며) 암환자? 요새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암이 거의 정복되지 않았나?  무슨 암인데 그래요?

 

민주

(힘없이) 췌장암 4기요.

 

인터뷰어

(탄식을 하며) 아… 췌장암. 아 그런군요. 딱하게 되었군. 마지막까지 정복하지 못한 췌장암이라니…

 

인터뷰어

(서류를 넘기며) 뭐… 정식 병원 기록은 여기 다 있으니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구요. 4기라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민주

(약간 초연한 얼굴로) 네.

 

인터뷰어

(고개를 들어 다시 민주를 보며) 정말 안락사를 하고 싶다는 거죠?

 

민주

(어깨를 으쓱하며) 네. 고통없이 끝내는 거. 그게 제 마지막 소원이예요.

 

인터뷰어

좋습니다. (정석으로 보며) 그리고 다음은… 



정석

저도 안락사를 원합니다.

 

인터뷰어

좋아요. 그런데 왜 원하는 거죠? 명확한 이유가 아니면 정부는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아요.

 

정석

(권태로운 얼굴로)

재미가 없어요. 인생이. 

 

인터뷰어

그게 답니까? 

 

정석

네.  그냥 다시 리셋하고 싶습니다.

 

인터뷰어

아니. 사지 멀쩡하고 허우대도 어디 빠지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석의 인적사항 서류를 넘겨보며) 결혼도 아직 안했군요.

 

인터뷰어

(정석을 다시 보며) 그냥 살아가 봐요. 착실하게 일하면서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같고 그런 평범한 인생을 말입니다. 지금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못해서 권태롭고 삶이 지겨워진 거 같은데 인생과 가족에 대한 책임이 생기면 시간은 화살과 같이 흘러가거든요.

 

정석

(굳은 얼굴로) 아니요. 그게 안됩니다. 

 

인터뷰어

왜 안된다는 거죠?

 

정석

(주먹으로 눈앞의 허공을 쿵쿵 치는 행동을 하며)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그 벽이 저를 지금 짓누르고 있어요. 평범하게 살라구요? TV속에 나오는 그런  주인공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몇마디 비중의 조연이라도 시켜준다면 감지덕지 만족하겠어요.

 

정석

(무덤덤하게 다시 입을 연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취직을 하려고 해도 뽑아주지 않고, 기껏 파트타임 알바로 푼돈이라도 벌면 승냥이처럼 세금으로 떼어가고, 집에 있는 노인들 약값으로 나가고, 집 월세로 얼음녹듯이 사라집니다.

 

정석

(한숨을 쉬며) 결혼이요? 이런 30대 무직 빈털털이에게 누가 시집이라도 온데요? 이 피끓는 나이에 주체하지못하는 성욕도 겨우 모니터와 휴지로 노예처럼 풀고 있습니다. 차라리 동물원에서 사육당하는 동물들은 거세라도 시켜주지만 저는 그것도 불가능하죠. 그리고 운좋게 저기 베트남 눈먼 아가씨 대출받은 몇천만원에 사서 결혼한다고 해도 지금 집에 누워있는 두 노인네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여기에 무책임하게 새끼를 칠 엄두가 안납니다.

 

정석

(어깨를 으쓱하며) 가장 좋은 건 그냥 리셋하는 거예요. 지금 35살 제 나이에서 에너지가 넘처흐르는데도 옴짝달싹 아무것도 못하고 말라서 죽어가는 것만큼 고통스러운게 없어요. 그냥 평온하게 죽고 싶어요.

 

인터뷰어

(착찹한 얼굴로) 어휴... 어떤 사정인지는 잘 알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부는 그런 이유로 안락사를 시켜주진 않습니다. 

 

정석

결국 여기서도 저는 찬밥이군요. 제기랄.

 

인터뷰어 

죄송합니다. 가능한 긍정적으로 코멘트하더라도 우선순위에서는 밀릴수밖에 없어요.

 

정석

(이글이글 눈에 분노를 보이며) 어쩔 수 없죠. 평화로운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안된다면 차선책을 알아볼 수밖에요.

 

인터뷰어.

휴우… 그렇군요. 

 

인터뷰어는 정석의 서류에 “negative” 라고 코멘트를 작성한다. 

 

인터뷰어

(정석을 가리키며)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석씨는 방금전 이 안락사를 삶의 리셋이라고 표현했죠? 그런데요. 사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몰라요. 리셋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세상 즉 천국에서 살지 아니면… 자살에 준하는 안락사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 지옥에 떨어질지.

 

인터뷰어

정석씨. 만약 이 선택의 결과로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정석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저는 행복하게 죽을 권리를 믿어요. 만약 그게 죄라고 한다면… 그래서 그때문에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면, 그건 제가 잘못한게 아니라 나를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들고 그 지옥이라는 시스템을 만든 그 놈이 잘못한 겁니다.

 

인터뷰어

(한숨을 쉬며) 휴… 그래요. 알겠습니다. 인터뷰는 이만해도 될 거 같습니다

 

정석과 민주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고 회의실에서 빠져나간다. 인터뷰어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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